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주거지 <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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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7.10.12

<해운대의 자연마을 좌동>


송정·기장방면 왕래하는
지방도로 길목에 위치
지경역참·주막 … 교통요지


넓은 장자벌은 곡창지대
오랜 농경생활을 유지한
김해 김씨 집성촌



좌동마을
좌동(佐洞)마을은 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춘천의 왼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좌동(左洞)·좌리(左里)라고 불린다. 지금은 도울 좌(佐)를 써서 좌동(佐洞)으로 표기하고 있다. 좌동마을은 춘천 상류를 경계로 중동(中洞)의 대천마을과 인접해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이다. 조선시대 이 마을은 해운대에서 송정·기장방면으로 왕래하는 지방도로의 길목에 위치해 지경역참과 주막이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방리조에 의하면, 좌동은 동면 관내에 있으며 관문에서 15리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1904년 간행한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 의하면, 동하면 관내에 좌동마을이 있다. 당시 좌동의 호수는 34호이다. 김씨가 21호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 밖에 송·이·박·정(鄭)씨 등 성씨가 살고 있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1971년과 1976년 <부산지역 동성마을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좌동에는 29호의 김해 김씨 동성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동래부동하면고문서> 중 <장산신당중건모연문(1924년)>에는 수백 년 전에 신당을 창건해 매년 1월 3일과 6월 3일 2차례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주업인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다.
좌동마을은 넓은 장자벌이 있어 곡창지대로 오랜 농경생활을 유지한 김해 김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장자벌의 지명이 들넘어, 몰리터, 고래등, 장자터 등 우리말 표기로 땅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오래된 마을로 추정된다.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으로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래군 남면에 편입됐는데, 1942년 부산부에 편입되고 1957년 1월 1일 구제 실시로 동래구에 편입됐다가 1980년 4월 1일 해운대구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운대신시가지는 1986~1991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됐으며 1992년 단지조성공사에 들어갔다. 이때 좌동마을은 2/3를 아파트부지로 선정, 현재 롯데캐슬아파트가 됐다. 좌동마을은 아파트단지 문화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좌동마을은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농촌이었는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탄약고가 설치돼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됐다. 좌동 주민들은 검문소에서 통행증을 제시해야해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좌동마을에 동성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김해 김씨의 입향조는 김학봉(金鶴鳳)으로, 사상(沙上)에서 살다가 임진왜란(1592년) 직후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의 무덤은 사상에 있었으나 학교 부지로 매입됨에 따라 좌2동 도산소로 이장했다.
덕송재(德松齋)는 김해 김씨 삼현파 좌동문중회 후손들이 선대의 입향에 건립한 재실로 좌1동 911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덕송재는 철근 콘크리트 2층 청기와 한옥건물이다. 이 재실에 모신 위패는 김해 김씨 103위와 한국전쟁 참전용사 8위 모두 111위이다. 음력 10월 10일을 기점으로 일요일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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