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와 대중가요 - 배무이 송정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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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19.01.07

광어골은 골마다 기염이요, 다리돌은 여름의 나그네라

돛배 나룻배 거룻배
배를 만드는 고장
송정의 옛 정취
배무이 송정찬가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조선 팔경가(대한팔경, 왕평 작사/형석기 작곡/선우일선 노래)
에헤 금강산 일만 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한라산 높아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후렴)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에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에헤 석굴암 아침 경은 못보면 한이 되고/ 해운대 저녁 달은 볼수록 유정해라/

일제강점기 최초의 인기가수를 꼽으라면 선우일선(1919~1990)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용서면에 태어나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하여 기생권번에서 기생교육을 받은 뒤 평생기생이 되어 배우, 가수로 활동하였다. 1933년 4월 우리나라 전담 방송이 시작될 무렵 선우일선은 일제강점기 가요 전성기의 화려한 불꽃을 피웠다.
작사자 왕평은 편월이란 예명으로 2/4박자에 가단조로 된 중국의 샤오샹팔경에서 유래된 노래를 조선팔경가라는 제목으로 폴리돌레코드사(SP음반)에 취입했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면서 선풍적 인기몰이를 했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제목을 대한팔경으로 바꾸고 가사는 1절과 2절만 그대로 두었을 뿐 북한 지명이 들어간 3절과 4절은 축소돼 다른 내용으로 대체됐다.
송정은 동해에서 가장 남쪽의 해수욕장으로 모래사장은 1.2km, 폭 57m, 총면적 6만 2천150㎡다. 그 명칭은 죽도 앞 거북바위에 서있는 일송정에서 따왔다. 이 나무는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바다 바위에서 수백년 동안 자라 마을의 상징처럼 여겨져왔으나 전쟁 당시 주둔한 영국군의 사격연습 목표가 되어 고사해 버렸다.
송정해수욕장은 1965년 7월 9일 개설되었으나 전쟁 이후 계속 군의 작전지구로 군대가 주둔하고 해수욕장 6천 600㎡ 부지에 군 휴양소가 설치됐다.이 시설물들이 피서객들의 놀이 통행을 가로막고 위화감을 조성하므로 경계 철조망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후 1990년대 초 일반에 개방됐다.
또한, 송정·기장 땅에 수백 년 동안 자라온 느티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소나무 등이 많았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이 나무로 선조들은 배를 만들었으며 6·25 전쟁 전후에는 피난민들이 무동력목선을 만들며 배무이(배를 뭇는 일, 배를 만드는 일)를 하며 살았다. 이에 따라 야거리(돛배·나룻배), 매생이(그물배나 낚시배), 당도리(거룻배) 등의 목선을 건조하기 위해 배무이(조선) 기술자들이 모여서 한 마을을 이루었다. 또한, 뗏목이나 멍텅구리 배로 돛이나 노를 저어 신선대부두(동명부두)까지 운반하며 동명목재㈜가 생겼다. 목선을 만들 때 조선팔경가(대한팔경) 가사를 바꿔 불린 노래가 오늘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배무이 송정찬가
광어골 열두골은 골마다 기염이요 다리돌 바라보니 여름의 나그네라/ (후렴) 에헤야 좋구나 좋다~ 명승의 송정이 자랑이구나/ 대성(죽도)에 일본송은 못보면 한이 되고 성 뒤에 돋는 달은 볼수록 찬란하네/ 간진암 열두 봉은 봉마다 기암이요 우뚝 선 만덕봉은 평온을 지켜주네

송정찬가 속의 다리돌은 청사포와 구덕포 경계 바다 속의 바위, 일본송은 죽도 안에 있던 한 그루 소나무, 간진암은 오륙도 쪽으로 바다 속에 있는 바위, 만덕봉은 공두 쪽 송정천 앞 산을 이르는 말이다.〈다음호 계속〉

박 명 규
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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