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처음의 두려움보다는 끝의 안일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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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19.01.07

두려워하면 그 마음이 조심하는 까닭에 정사가 잘 다스려지고
안일에 빠지면 그 마음이 방탕해지는 까닭에
정사가 해이해지는 것입니다
恐懼則其心警 故政治修 安佚則其心蕩 故政治弛
공구즉기심경 고정치수 안일즉기심탕 고정치이

<일성록(日省錄)> 순조 11년 5월 9일

이 글은 1811년(순조11) 5월 9일에 부교리 정원용(鄭元容)이 올린 고사(故事)의 한 구절입니다. 고사란 글자 그대로 옛날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 나라에 근심이 생겼을 때 임금에게 교훈이 되거나 경계가 될 만한 옛일을 글로 지어 올린 것입니다. 고사의 내용은 대체로 옛 시대의 명철한 임금의 성덕(盛德)과 어진 정사, 또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어리석은 군주들의 일화들이 주를 이룹니다.
당나라 현종은 당나라 최고의 치세(開元之治, 개원지치)를 이루었다가 집권 후기에 양귀비에게 빠져 안녹산의 난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위의 고사에서 정원용은 현종이 개원 연간의 치세를 이루자 그 마음이 안일에 빠진 탓에 뒤에 천보 연간의 난세가 이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근심은 무엇이었기에 이와 같은 고사를 올렸던 것일까요? 조선은 1809년에 기록적인 대기근을 겪은 것도 모자라 1810년부터 계속적인 가뭄이 들었습니다. 이에 순조는 1810년 6월 7일 1차 기우제를 올린 뒤로 1811년 5월 1일에 11차 기우제를, 5월 4일부터 12차 기우제인 오방토룡제(五方士龍祭)를 몇 차례 지냈습니다. 농업을 경제의 근간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 암흑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정원용은 이 고사를 빌려 순조에게 어떤 충고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순조는 즉위 초(1800) 전대(前代) 정조(正祖)의 노력과 거듭된 풍년에 힘입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한 태평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기근과 가뭄을 차례로 겪게 되었던 것이지요. 흉년이 들면 왕은 정사에 더욱 마음을 기울여 앞 시대의 안정을 잊고 곧 다가올 국가의 환난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정원용은 앞 시대의 치세는 잊고 지금 닥친 환난을 극복하기 위해 더 조심스럽게 정사에 임하라는 경계를 올린 것입니다.
순조가 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였을까요. 이해 12월에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원용이 순조에게 들려준 옛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더 먼 옛날의 이야기입니다만,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한 경계일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처음이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그 끝을 잘 맺는 사람은 드물다(靡不有初 鮮克有終 미불유초 선극유종)라고 하였습니다. 갈무리를 잘 하지 못하면 초기의 각오와 성과는 말기의 실패에 가려집니다. 연말연시 시작의 두려움보다는 끝의 안일을 경계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박 준 철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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