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나라 위해 목숨 바친 남원 양 씨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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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19.01.07

땅으로 자라던 반송의 겸손
삼절사에 충절로 맺혔다
아파트숲 자리잡은 삼절사
충절의 고장 반송동 상징
제 한 몸, 제 가족만 챙기는
세태에 선비정신이 그립다

전쟁은 참혹하다. 그리스, 로마 시대는 물론, 수십만 명을 생매장했다는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의 다툼,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살해한 제2차 세계대전도 그렇다. 인간의 탐욕이 낳은 비극이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목을 쳐라고 비유됐던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울게 하라는 꾀보였다. 그는 1592년 중국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며 조선의 길을 빌려달라며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은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동래읍성으로 진격하였다.
동래부사 송상현 공은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며 동래부민과 함께 결사 항전하였다. 17년 후 이안눌 동래부사가 집집마다 곡소리가 들리기에 향리에게 물었더니 읍성 전투에서 한 날 같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었으나 두견새가 울 때 까지 기다려라는 자세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말았다.
1970년대 정책 이주촌이었던 해운대구 반송동. 지금은 대학이 두 곳이나 세워졌고 도시철도가 지나다니고 현대식 아파트도 많이 들어섰다. 그 고층 아파트 숲 속에 자리 잡은 삼절사(三節祠)는 이 지역이 충절(忠節)의 고장임을 말해준다.
이 사당은 양지(梁誌), 양조한(梁朝漢), 양통한(梁通漢) 등 남원 양 씨 세 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양지는 임란 때 삭녕(지금의 파주, 연천) 군수로 있으면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양조한은 동래향교 훈도로 있으면서 동래부사 송상현 공과 함께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외아들 양홍도 이 싸움에서 세상을 떠났다.
양통한은 형과 조카가 왜군에 의해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이 되어 북상하는 왜적을 추격했고, 곽재우 의병장과 더불어 창녕 화왕산성 전투에 참가하였다. 양조한의 손자 양부하(梁敷河)는 13세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함께 독약을 양약이라고 속여 도요토미를 서서히 죽게 하였다고 한다. 32세가 되어서야 돌아온 그는 양통한의 도움으로 재산을 물려받고 결혼하게 되었다. 반송에 살던 후손들과 고을 선비들의 건의에 의해 1839년 조정의 허락을 받아 동래부의 지원으로 삼절사가 세워졌다. 1986년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1호로 지정되었다. 호국과 충효의 상징이니 1호가 될 수밖에.
정문인 삼절문을 지나면 재실인 반송재와 모현관이 있고, 중앙에 세한당(歲寒堂)이 보인다. 논어의 세한지송백(歲寒知松栢)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소나무와 잣나무의 늘 푸른 절개는 날이 추워진 뒤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 연경에서 어렵게 구한 경세문편(經世文編)이라는 서적을 보내주자 그 고마움을 세한도(歲寒圖)라는 문인화를 그려 보내준, 바로 그 뜻과 같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변함이 없는 선비의 절개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고귀함을 지키는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매화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부르며 절개와 의리의 상징으로 삼았던 게 그런 까닭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 싸운 남원 양 씨 일가에 어울리는 당호다.
계단 입구엔 난리를 당하여 나라를 잊지 아니 하였으니 충(忠)이라고 하고, 백성이 다치게 됨을 슬퍼하며 살피었으니 민(愍)이라 한다(臨亂不忘國曰忠 使民悲傷曰愍)는 주련이 걸려있다. 세한당 뒤뜰을 지나면 내삼문을 통해 사당으로 갈 수 있다.
땅으로 땅으로만 자라던 반송의 겸손은/ 삼절사 처마 밑에 충절로 맺혔다 박두길 장산문화원장의 반송연가 시비(詩碑)의 한 구절이다. 양지, 양조한, 양통한 등 남원 양 씨 일가의 애국, 애족, 애민 정신이 살아있는 반송을 어찌 부산의 변두리로 버려둘 수 있겠는가.
제 한 몸, 제 가족만 챙기는 세태에 선비정신이 더욱 그립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다.
삼절사는 한 사람이 아니라 반송에 세가를 이루고 살았던 남원 양 씨의 충혼이 오롯이 남은 곳이다. 삼절사지알록, 삼절사고왕록, 상절계안 등 고문서가 남아있어 더욱 흥미롭다.

박병곤,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나라 위해 목숨 바친 남원 양 씨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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