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나무> 재송포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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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4.08.16

"단풍나무도 대나무도 파릇한데 좀 아쉽네요"


재송포의 나무는 좀 아쉽다. 지명과 나무가 따로 논다. 지명 따로, 나무 따로다. 재송포 있는 곳은 해운대 재송동 수영강 강변. 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보인다. 잘 다듬은 화강암 표지석과 현대적 감각의 철제 안내판을 세워둬서 눈에 금방 들어온다. 재송포 저게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라도 다가가게 된다.
뒷산인 장산이 봉산(封山, 나라에서 필요한 목재를 조성하기 위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산으로 주로 소나무가 되었다)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안내판 한 구절이다. 여기서 조선시대 공용 소나무를 재배해 재송(栽松)이었고 포구가 있어서 재송포(栽松浦)였다는 설명이다. 재송포 건너편 저쪽은 수영. 수영(水營)은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하던 군영이었다. 재송포 소나무로 수군 전선(戰船)을 만들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갈 때 여기서 만든 배 두 척을 탔다는 기록도 보인다.
지명 그대로 재송포의 나무는 소나무. 1740년 발간한 부산의 백서 <동래부지(東萊府誌)>는 소나무 만 그루가 서 있다고 기록했다. 소나무를 하나하나 세어보기야 했겠나만 그 정도로 많았다. 강 저편에서 보면 소나무 사이사이 재송포 불빛이 일렁였다. 재송포 아낙들은 밤이면 등잔불 켜놓고 베를 짰다. 그게 수영팔경 하나인 재송직화(栽松織火)였다.
지금 재송포 표지석 있는 곳은 매립지. 1992년 온천천 직강공사를 벌이면서 반듯해졌다. 원래 재송포는 어땠을까. 옛날 지도에 나온다. 1872년 제작한 군현(郡縣) 지도는 수영 선창 바로 맞은편에 집 세 채와 창고를 그려 넣고 재송리(栽松里)라 적었다. 강은 구불구불하고 강과 재송리 사이는 백사장이 길게 이어졌다.
현재 표지석 주변 나무는 질보단 양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나무는 없어도 이런저런 나무에 촘촘하게 둘러싸여서 포근한 느낌을 준다. 몰아치는 강바람을 막는 방벽(防壁)으론 손색이 없지 싶다. 조선시대 그때도 재송포 소나무 만 그루가 어찌 전선으로만 쓰였을까. 온갖 풍파에서 사람의 마을을 막아내는 방벽이었으리라.
"단풍나무도 대나무도 파릇한데 좀 아쉽네요."
지금은 한여름. 지칠 만도 한데 나무는 하나같이 파릇하다. 나무가 파릇하니 산책객 표정도 파릇하다. 산책하면서 늘 보는 나무고 늘 보는 표지석이지만 지날 때마다 눈이 간다. 그렇긴 해도 표지석을 보노라면 좀 아쉽다. 지명도 그렇고 표지석도 그렇고 모두 소나무를 가리키는데 보이는 나무는 단풍나무, 대나무. 파릇한 건 좋은데 아쉬운 건 아쉽다.
소나무 자랑 한마디! 소나무 한자는 송(松). 나무[木]의 귀공자[公]가 소나무다. 옛사람들은 소나무를 귀하게 봤다. 금지옥엽 귀하게 모셨기에 소나무마다 이름을 달리 달았다. 금강산 지명을 딴 금강송이 있었고 정승급 벼슬을 하사받은 정일품 소나무가 있었다. 그런 나무 하나 여기 모셔두면 어떨까. 여기를 지나는 이 누구라도 금강인 양 번쩍이고 정일품인 양 높아질 텐데.
동길산 시인

<해운대의 나무> 재송포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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