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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자연에서 얻는 기쁨

문화∙생활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1.07.05

한 톨의 깨알 같은 씨앗에서 느끼는 신비함과 강인함
삶의 90% 이상을 실내에서 지내는 진짜 동굴거주자
정원 주말텃밭 옥상정원 … 당장 가능한 것부터 하기
수많은 탄생 성장 결실 죽음의 과정을 볼 수 있어

최근 주말에 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시 텃밭 분양을 받았다. 분양 신청자가 상당히 많아 경쟁률이 예상외로 높았다. 상당수가 젊은 층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텃밭을 일구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야생의 땀방울에서 흘러넘치는 행복한 표정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초원에서 삶을 시작한 인류는 초원에 대한 본능적인 향수가 있다. 탁 트인 초원에서는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정원은 초원의 축소판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마저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텃밭으로 타협을 한다.
텃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교수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세포가 시키는 대로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자연의 언어를 그의 체화된 언어로 쉽게 가르쳐주었다. 생태주의자 소로우는 그가 살았던 숲속 오두막 근처의 농부학교에서 허클베리 수업을 받을 때가 가장 훌륭한 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교수로부터 수업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또 인간은 왜 일찍 자연의 젖을 떼며 오직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 하는지 무척 안타까워했다.
텃밭 교수는 최근 추세는 꽃도 함께 가꾸는 텃밭 원예라며, 메리골드 묘종도 나누어주었다. 필자는 봉선화, 백일홍, 채송화 씨를 사서 텃밭의 한 고랑에 뿌렸다. 연둣빛 잎들이 차츰 자라더니 꽃들이 활짝 펴 가장 먼저 반겨준다. 봉투 속에 담긴 깨알 같은 씨가 햇빛을 먹으며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잎사귀와 꽃, 씨앗을 생산해내는 게 신비롭기 그지없다. 아니, 신비함을 넘어서서 너무나도 강인해 스스로 이룬다는 자연(自然)의 말뜻을 실감나게 한다.
텃밭을 갈 때마다 깻잎, 상추, 가지, 고추, 호박, 브로콜리, 옥수수 같은 여름작물의 성장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학자 카를 린네가 하루 중 꽃 피는 시간이 각각 다른 꽃들을 구역별로 모아 살아 있는 꽃시계를 제작했다던 낭만적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정원과 텃밭 토양도 조석력에 의해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한다. 지렁이와 토양 속의 많은 미생물들은 그것을 인지해 생물활동을 하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그런데 아스팔트로 토양을 덮어버리면 땅 속 생물들은 생체리듬을 인지하지 못한다. 땅 숨구멍도 없어져 토양의 사막화와 경질화가 진행된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텃밭 주위에 쭉 늘어선 느티나무, 참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푸른 잎들을 보면 굳어있던 마음의 근육이 풀린다. 식물 잎들이 푸른 것은 묵묵히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름에 접어들면 식물들은 잎과 꽃을 생산하기 위해 쏟아 부었던 고된 노동을 멈춘다. 겨울한파(서리)를 넘기기 위해 내적인 성장에 돌입하는 것이다. 잎으로 향하는 영양분이 끊어진 채 잎사귀 색깔이 바뀌는 게 단풍이다. 이렇듯 열심히 일할 때는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푸른 잎이 한해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그 성숙한 모습을 펼치는 게 눈부신 단풍이다.
삶의 90% 이상을 실내에서 지내는 우리가 진짜 동굴거주자인지 모른다. 인간키에 비해 7~8배 더 큰 장산의 느티나무가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4천5백년을 거뜬하게 사는 나무가 있으며, 나뭇잎 그늘로 7천 명을 편히 쉬게 하는 나무도 있다. 우리는 나무를 단지 인간의 처리 대상인 목재로서 인지할 뿐, 놀라운 생명의 현상이 거기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많은 도시인들이 시골 생활을 꿈꾸며,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시청하며, 도시텃밭을 가꾸며, 베란다 상자 텃밭을 하며,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동들은 초원을 향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도시 생활에서 생기는 자연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을 유사 자연(pseudo nature)을 통해 채우는 것이다.
우리는 숲속의 삶을 꿈꾼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우주를 탐구한다고 해서 우주를 다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뿐더러, 불가능하다. 그 꿈은 잠시 미뤄둔 채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정원이든, 주말텃밭이든, 옥상정원이든, 실내 수경식물 재배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여기서도 수많은 탄생, 성장, 아름다움, 결실의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은 죽음과 삶의 순환을 반복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살다 죽는 것은 멸망이지 생명이 아니라고 한다"며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꼬집었다. 흙을 가꾸는 일은 내 존재를 가꾸는 일이다.

박태성

·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석사/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 저서 유쾌한 소통(산지니 출판사), 예술, 거리로 나오다(서해문집)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자연에서 얻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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