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나루공원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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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5.12.03

해운대 지키는 수호목


꽃과 열매, 맑은 물과 공기
그저 아낌없이 내어줄 뿐 …


언제부터인가 해운대 센텀시티를 지나갈 때 고개를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돌리는 습관이 들었다. 마치 군인 장병들이 사열을 하면서 임석상관을 향해 우로 봐하듯이 말이다. 2010년 4월 2일 가덕도에서 센텀시티 APEC나루공원으로 옮겨온 팽나무 두 그루가 안녕한지 궁금해서다. 수령이 500년이나 된 노거수(老巨樹)에 대해 문안인사를 드리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 백성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며칠 전 배낭을 둘러메고 공원 산책을 하면서 찾았더니 노랗게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할배나무는 높이 12m 둘레 15m 무게 72t, 할매나무는 높이 10m 둘레 12m 무게 55t이나 되는 위용을 자랑하는 거목인데, 노란 단풍이 들고 보니 마치 화장을 한 듯 훨씬 젊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곱게 차려입고 단정한 모습이라야 한다고 했는데 나무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할배나무, 할매나무가 해운대로 이사 올 때 얼마나 화제를 모았던가. 각종 언론에 50여 차례나 보도되었다고 했지. 부산 신항만 배후도로 공사 때문에 가덕도 천가동 율리마을에서 해운대로 옮겨오면서 바지선 두 척과 트레일러에 실려 25시간 여행을 했으며, 크레인과 굴착기 등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비용만 2억5천만 원. 게다가 워낙 수령이 오래 되었고 커다란 나무여서 뿌리가 제대로 내리도록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다. 필자는 팽나무를 옮겨 심던 날, 현장에서 그 장관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새 잎이 제대로 나올지 몇 차례나 방문하여 가슴 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도 온갖 풍상(風霜)을 겪어보아야 경륜이 축척되듯이 나무도 100년 세월은 지나야 위의(威儀)를 갖추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500년이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맞고 또 보냈을 것이다. 가령 정확하게 500년 전, 즉 1515년엔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소설 유토피아를 집필할 때이며, 세계적인 사진작가 배병우 씨가 경주 남산의 소나무 사진작품을 전시 중인 프랑스의 고성 샹보르 성을 건축하라는 루이 12세의 지시가 하달된 때이다. 임진왜란이 1592년 발발했으니, 할배나무 할매나무는 77세 때 가덕도 앞바다로 몰려오는 왜선을 목격하고 무척 놀랐으리라. 일제강점기 땐 징병이나 징용에 끌려가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고 가슴 아팠으리라.
나무도 나이가 많아지면 신령(神靈)이 깃드는가. 뉴질랜드 북섬에는 카우리 나무 원시림이 많았는데, 19세기 잇단 벌목으로 지금은 4%만 남아있다. 와이포우아 지역 숲에는 수령 2천 500년 된 높이 48m, 둘레 14m인 카우리 나무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어른 13명이 양팔을 벌려야 할 정도로 굵다. 이 나무는 숲 속의 신이라고 불린다. 1880년대 자녀를 13명 둔 어느 부부가 카우리 나무 기둥 속에 집을 지어 14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일본 규슈 남쪽 야쿠시마 섬에는 수령 1천 년이 넘은 삼나무가 원시림을 이룬다. 이 지역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의 배경이 되었다. 높이 25.3m, 둘레 16m인 죠몬스기는 수령이 7천 2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측정방법에 따라 2~3천 년이라는 추정도 나오지만 성스러운 나무임에 틀림없다.
이양하 선생은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라고 상찬하였다. 비와 바람, 찬 서리와 눈을 거뜬하게 이겨내니 견인주의자이며, 꽃이나 새가 사라진 짓궂은 날씨에는 홀로 고독을 즐기니 철인이 아닌가. 달은 달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친구가 되어주고, 장난꾸러기 소년이 돌을 던지거나 상처를 내도 원망하지 않으니 현인이다. 나무는 꽃과 열매, 맑은 물과 공기 등 아낌없이 내어줄 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APEC나루공원의 팽나무도 수영강의 물을, 앞바다의 요트를, 오고가는 자동차를, 센텀시티와 마린시티의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고 지켜준다. 소풍 나온 꼬마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배경이 되어주며, 외로운 노인네들의 말벗이 되어 주리라. 앞으로 500년, 아니 1천 년 이상 해운대의 수호목(守護木)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다. 할배 팽나무, 할매 팽나무가 있어 해운대를 찾는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든든하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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