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이 사람> 박정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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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4.05.16

기억하시나요?
달맞이 AID 아파트

사라지고 없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기억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사라지고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주위에 있던 일상적인 것들이 사라져서 흔적마저 자취를 감추고, 기억마저 희미해진다면? 모든 것이 없어진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사진작가 박정화 씨의 눈이 그렇다. 빛과 그림자로 그는 여전히 그것을 기억한다. 사라지고 없는 에이아이디 아파트를.

오! AID 아파트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28일까지 동구 산복도로에 있는 갤러리 수정에서 <에이아이디 아파트> 초대전이 열렸다.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있던 에이아이디(AID) 아파트가 왜 산복도로에 갔을까?
"2년 전에도 에이아이디 아파트 사진전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기억 저편 AID 아파트>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걸었죠. 이번엔 사라지고 없어진 장소와 머지않아 곧 사라질 수정아파트라는 공간을 대비시켜서 기억과 장소성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사진들을 구성했고요, 그때 전시하지 않았던 사진까지 많이 포함시켰어요."

순간은 영원이 되고 일상은 역사가 되다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AID 아파트가 있었다. 45개 동, 2천60가구가 거주했던 이 아파트는 미국의 대외개발처,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AID)의 이름을 땄다. 1975년 미국 차관을 받아 지은 아파트였다. 2012년 여름, 완전 철거되고 그 자리에 힐스테이트 위브가 들어섰다. 힐스테이트 위브는 2천369세대 규모에 최고 53층 높이를 자랑한다.
작가는 말한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달맞이언덕엔 "우리가 놓친 것들과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되돌아 볼 수 있는 것들이 거기 있다. 우리가 그것을 기억할 때 그것은 손을 잡아주듯 우리 마음을 잡아준다."고.
"38년간 유치원 일을 하면서 아이들 노는 모습 같은 소소한 사진을 많이 찍어줬어요. 아버지께서도 사진을 하셨죠. 어릴 때 제 기억엔 아버지 목에 늘 사진기가 걸려 있었고, 집에 암실도 있었고, 8밀리 영화 카메라를 다루실 정도셨어요. 저희 커가는 모습을 많이 찍어주셨죠. 그래서 자연스레 카메라와 친해졌던 거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들 사진 찍어서 인화해 주고 했으니까요."

고 최민식 선생과 필름 35롤
박정화 작가는 개인전을 다섯 번 했다. 첫 번째 개인전은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인도 배낭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나 자신을 찾아서 인도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출국을 며칠 앞두고 지인과 같이 식사하시는 최민식 선생님을 우연히 뵀어요. 인사를 드리면서 인도엘 간다 하니까 대뜸 필름은 몇 롤 가져 가냐 하시는 거예요. 너무 적다. 그거 가지고 뭘 어떻게 하려고 하시면서 당신 가방 속에서 35롤을 꺼내주시더라고요. 가져간 70롤 다 쓰고, 인도에서 30롤 더 사서 찍었어요."
박정화 작가는 문청(文靑)이었다. 지금은 동시 작가를 꿈꾼다. 그의 렌즈가 피사체 너머를 속 깊이 바라보는 것도 문학적 상상력과 시각을 밑절미 삼은 시·공간에 대한 연민과 통찰의 기록들이리라.
"저희 집 위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에이아이디 아파트가 나왔어요. 달맞이언덕으로 가려면 에이아이디 아파트를 지나가야 했어요. 일상의 공간이었죠. 그런데 곧 폐가가 되고, 사라질 아파트라는 생각이 드니까 제 손에 카메라가 쥐어져 있고,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찍을 수 없을 때까지 사진을 찍고 있는 거예요. 제게 에이아이디 아파트는 시가모노(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놀이터)였어요."

서로를 이해하며 연결하는 관계 맺기
"송정, 청사포, 요트경기장…. 배가 있는 곳은 다 다녔어요. 사진 찍는 시간대가 중요해요. 직장이 있으니까 휴일밖에 시간이 안 나서 새벽 해뜨기 전에 나가서 서너 시간 작업을 했죠. 그러다가 양철쓰레기통도 찍고, 영도 깡깡이마을도 가고 쇠가 있는 데는 다 찾아다녔죠."
글벗으로 만난 남편 동길산 시인이 사는 고성 집에 갔다가 비 맞은 양철에서 피어나는 녹을 찍은 것을 주제로 작업한 것이 네 번째 개인전인 시간꽃이다. 오래된 쇠붙이는 사라지지 않고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 꽃으로 피워낸다. 박정화 사진의 새로운 시도이다.
"동길산 시인이 부산일보, 국제신문에 글을 연재할 때 제가 사진작업을 했어요. 등대, 포구, 부산의 고갯길을 찍었죠. 해운대는 사진 찍기 참 좋은 곳이죠. 사진 찍느라 청사포에서 송정까지 참 많이도 걸어 다녔네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뭘까?
단지 기록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기 때문 아닐까? 사진을 통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감정을 전달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연결하는 새로운 관계 맺기가 아닐까?
그래서 박정화 작가가 누르는 사진기 셔터 소리는 고3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을 어루만지는 소리가 아닐 런지? 그러기에 어쩌면 그의 사진 작업은 오히려 삶의 내밀한 기록인지도 모른다. "사진 찍어서 뭐 할 건데?"라는 화두를 계속 던지며….
글 원성만

<해운대 이 사람> 박정화  사진작가

<해운대 이 사람> 박정화  사진작가

<해운대 이 사람> 박정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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