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독이고 위무하다 …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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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7.08.03

앞바다에 늘어선 다섯 암초가 징검다리 같아
토박이들이 붙인 청사포의 또다른 이름 다릿돌
다릿돌 성큼성큼 밟고서 바다를 건너고 싶다
미지의 세계,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삶에 지친 이를 다독이고 위무하는 다릿돌전망대
자꾸만 떠오르는 눈부신 해운대 비경을 마주하다


다릿돌은 순우리말이다. 개울을 건너려고 띄엄띄엄 놓은 돌이 다릿돌이다. 징검다리를 생각하면 되겠다. 청사포 다릿돌은 해운대구 청사포 앞바다에 가지런히 늘어선 암초가 징검다리 같다고 해서 오래 산 토박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여기 토박이에게 청사포와 다릿돌은 동격이다. 출향인이 고향 청사포를 그리워할 때 떠올리는 것 중의 하나가 다릿돌이다.
청사포는 해운대구 한적한 포구다. 세계도시 해운대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적하다. 오죽 한적했으면 대중교통은 마을버스 하나뿐이다. 해운대 스펀지 근처에서 출발하는 2번 마을버스 종점이 청사포다. 한적한 게 낯설어 갈매기가 왔다간 되돌아가고 파도가 왔다간 되돌아간다. 갈매기는 되돌아가고 갈매기 소리가 스며든 포구, 파도는 되돌아가고 파도 소리가 스며든 포구, 거기가 푸른 뱀의 전설이 도사린 청사포다.
청사포는 기찻길 포구. 해운대 미포에서 송정해수욕장 사이 동해남부선 기찻길과 맞닿는다. 기찻길은 몇 년 전 다른 데로 옮겨가고 지금은 기차 대신 사람이 다닌다. 기찻길을 다니던 기차도 길었지만 기찻길을 다니는 사람의 행렬도 길다. 어떤 날은 기차보다 길다. 기차보다 길어서 이리 구불대고 저리 구불대며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찻길을 따라간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는 짓궂다. 기찻길에서 바다로 난 전망대는 기차보다 긴 사람의 행렬을 순식간에 흐트러뜨린다. 전망대에만 이르면 사람들은 기찻길을 벗어나 행렬이 일그러진다. 전망대 풍광에 반해 한 사람이 벗어나면 옆 사람이 덩달아 벗어난다. 전망대 풍광에 혹해 앞사람이 벗어나면 뒷사람이 덩달아 벗어난다. 딴에는 한 이름 하는 동해남부선 기찻길이지만 다릿돌전망대 때문에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전망대답게 탁 트인 시야가 시원시원하다. 청사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은 가지런히 늘어선 다릿돌. 맨 끝 다릿돌에 세운 해상 등대는 앙증맞다. 앙증맞아서 안아 주고 싶다. 등대 너머 저 멀리는 수평선. 전망대에서 수평선까지는 손바닥 한 뼘 거리다. 손가락 끝 마디에 수평선이 걸린다. 수평선 너머는 대마도다.
다릿돌은 모두 다섯. 물이 들면 올망졸망 보여도 물이 빠지면 삐쭉빼쭉 제법 위엄이 서렸다. 갈매기 흰 똥이 덮어 하얗게 보이는 다릿돌은 울릉도나 먼 이국에 온 것 같은 감회에 젖도록 한다. 전망대에 서면 누구라도 다섯 다릿돌을 성큼성큼 밟고서 바다를 건너고 싶어진다. 바다 건너 미지의 세계,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진다.
전복 멍게 소라 성게 해삼, 없는 게 없어요. 돌미역도 나오고요. 청사포 해녀는 마흔둘. 작업 구역을 둘로 나눠 청사포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물질하거나 청사포에서 송정 방향으로 물질한다. 연령대는 예순 초반에서 일흔 일곱까지다. 전복, 멍게 등등 없는 게 없는 다릿돌은 물살이 세어서 노련한 달인 해녀 열 명가량만 물질한다는 게 청사포 장기읍 어촌계장 귀띔이다. 다릿돌 일대는 물살이 빠르고 물이 맑으며 수심이 깊다. 덕분에 해산물이 쫀득쫀득하고 뒷맛이 오래 남는다. 내 아들 내 딸 먹이고 싶지 남한테 팔기 아깝다.
물질은 해녀 작업을 말한다. 물질 시간은 물때 따라 다르고 날씨 따라 다르다. 운이 좋으면 다릿돌전망대에서 해녀 물질하는 걸 구경하기도 한다. 잠수했다가 희유! 희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떠오르는 해녀를 보면 마음이 애잔하다. 엄마 같고 이모 같은 분이기에 따끈한 믹스커피라도 한 잔 건네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다릿돌마다 이름이 있으면 좋겠네요. 언론인 박병곤은 해운대초등학교를 나온 해운대 토박이. 부산일보 사회부장과 편집국장, 논설위원, 주필을 지냈다. 오륙도 다섯 섬 여섯 섬도 섬마다 이름이 있으니 청사포 다섯 다릿돌도 다릿돌마다 이름을 짓든지 의미를 붙이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토박이 지극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제안이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게 어디 있으랴. 백 년을 살까 말까 한 사람도 이름이 다 있는데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왔고 이어갈 다섯 다릿돌에 이름이 없다는 건 도리가 아니고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백 년을 살까 말까 한 사람의 작명에도 이 궁리 저 궁리 공을 들이듯 수백 년 수천 년 다릿돌 작명을 허투루 할 수는 없는 노릇.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중지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게 도리고 그게 예의다.
대신에 의미 부여는 가능하겠다. 청사포 다릿돌은 동해 첫 햇살의 기운이 스미는 신생의 다릿돌이다. 해녀들 강인한 삶의 현장인 역동의 다릿돌이며 남 주기 아까운 해산물이 꿈틀대는 생명의 다릿돌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개체를 늘려 사방팔방 퍼지는 풍요의 다릿돌이며 무엇보다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 면면히 이어지는 미래 희망의 다릿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고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 다릿돌전망대에 서서 그 소원을 들릴 듯 말 듯 되뇌면 어떨까. 신생의 다릿돌, 역동의 다릿돌, 생명의 다릿돌, 풍요의 다릿돌, 희망의 다릿돌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마음을 맞추며 짝 만나게 해 달라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게 해 달라고 들릴 듯 말 듯 진정으로 소원해 보는 건 어떨까.
다릿돌전망대에선 등대도 눈길을 끈다. 맨 끝 다릿돌 해상 등대는 등대 사촌쯤 되는 등표. 차가 다니는 도로에 도로표지가 있듯 배가 다니는 항로엔 항로표지가 있다. 도로표지가 수십 종이듯 항로표지도 수십 종이다. 사십 종에 이른다. 등대며 등표, 등주, 등부표, 입표, 부표, 도등, 교량 등 이런 것들이 다 항로표지다. 항로표지는 그게 그것 같아도 그게 그것인 항로표지는 하나도 없다.
등대건 등표건 항로표지는 저마다 고유한 언어가 있다. 그들은 등불로 색깔로 소리로 또는 다른 무엇으로 속에 있는 말을 한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간절하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지 한 마디 한 마디 우리가 무사하기를 바라고 우리를 배려하는 말이다. 사람도 그렇다. 너는 나에게 간절하게 말하는데 정작 나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청사포 다릿돌 등대는 색깔이 이채롭다. 색동저고리 같다. 몸통에 해당하는 등탑을 삼등분해 가운데가 노랗고 아래위 양쪽이 검다. 색깔 또한 등대의 언어다. 무슨 뜻일까. 이 근처를 지나는 배는 동쪽으로 가란 의미다. 반대로 갔다간 암초에 부딪든 해서 사달이 난다. 동쪽을 가리키는 등표가 있으면 서쪽을 가리키는 등표도 있을 터. 서쪽 등표는 가운데가 검고 위아래 양쪽이 노랗다.
남쪽을 가리키는 등대, 북쪽을 가리키는 등대도 물론 있다. 등탑을 이등분해 아래가 검고 위가 노라면 남쪽, 그 반대면 북쪽이다. 동백섬 앞바다 등대가 남쪽을 가리키는 등표다. 위는 노랗고 아래는 검다. 사람의 생애에도 동서남북 이정표 같은 등대가 있으면 좀 좋을까. 생의 굴곡마다 가도 되는 길과 가선 안 되는 길을 가리키는 등대가 있으면 사람의 생애는 덜 아프고 덜 외로울 텐데….
다릿돌전망대 오른쪽은 방파제. 방파제 끝자락에 등대가 있다. 방파제가 둘이라서 등대도 둘이다. 하나는 붉고 하나는 희다. 붉은색, 흰색도 등대 고유한 언어다. 배가 가는 방향을 좌우로 나타낸다. 들어오는 등대는 붉은 등대에 붙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배는 흰 등대에 붙어서 나간다. 항로표지 90%는 배의 진행 방향을 동서남북, 또는 좌우로 알린다. 나머지 10%는 암초가 있다든지 공사 중, 안전수역 등을 알린다. 사람이 지키는 유인등대는 오랜 날 망망대해를 운항한 배에게 육지가 가까웠음을 알리는 축복의 등불이다.
동서남북 일정지위야 전후좌우 무정지위야. 동서남북은 방향이 정해져 있지만 전후좌우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뜻이다. 한자로는 東西南北 一定之位也 前後左右 無定之位也다. 중국 명나라 사람 장조(張潮 1650∼?)가 쓴 글이다. 지금은 보는 방향이 앞이지만 돌아서면 뒤가 된다. 몸을 돌려세우듯 생각을 돌려세우면 답답하고 막막했던 일이 술술 풀리기도 한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등대가 남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청사포는 수평선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곡선미의 극치다. 지구가 둥그니 수평선은 둥글어야 하지만 부산 바다에서 둥근 수평선은 드물다. 대개는 직선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청사포 수평선은 문화재급이다. 다릿돌전망대에서 수평선을 오래오래 보노라면 마음이 수평선을 닮아 가는 걸 느낀다. 내 안에 난 모가 조금조금 깎여서 마음이 수평선처럼 둥글어지는 걸 느낀다.
수평선은 변함없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지구가 생긴 이래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없지만 수평선은 처음 그대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참 귀하다. 가치도 그렇다. 변함없는 친구가 소중하듯 변함없는 가치는 소중하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에서 보는 수평선은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흔들리고 가치관이 흔들리는 나를 다잡는 서늘한 바람 소리다.
수평선은 진정한 공존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흐린 날 수평선은 먹구름을 한가득 이게 마련이다. 먹구름은 아무리 두꺼워도 수평선을 짓누르지 않고 수평선은 먹구름 아무리 두꺼워도 선이 처지지 않는다. 힘으로 짓누르지 않고 힘에 주눅들지 않는 진정한 공존의 한 전형이 수평선과 먹구름이다. 지혜의 수평선과 지혜의 먹구름을 보는 곳, 거기가 다릿돌전망대다.
다릿돌과 해녀와 등대와 수평선을 품은 청사포는 한적하다. 한적해서 포구의 원형을 오롯이 간직한다. 전망대 뒤편 야산은 구석기 유적지다. 까마득한 옛날, 부산사람이 살던 터다. 그러니까 청사포는 포구의 원형이자 부산의 원형이다. 포구의 원형이자 부산의 원형에 들어선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한국에서 하나뿐이고 세계에서도 하나뿐일지 모를 다릿돌전망대는 삶에 지쳐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를 다독이고 위무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해운대 눈부신 비경이다. 한 번 가면 또 가게 되는 눈부신 절경이다. 


■동길산 시인·좌2동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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