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이 사람> 청산리전투 독립군 아들, 강귀철

null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6.01

모정원을 온전한 현충시설로 조성해
애국의 향기 채우고 싶어
강귀철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 유족 대표


"독립군 아들이 말과 행실이 바르지 않고, 술이나 마시면서 나쁜 짓 하고 돌아다닌다는 말이 나돌거나 꼬투리 잡힐만한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순간 너희 아버지와 집안의 명예는 그대로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너 자신도, 집안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어요."

독립군 아버지 생각하며 가난 이겨내
강귀철 대표(70)에게 장산 모정원은 엄마의 품 같은 곳이다.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청상이 된 모친 이정희 여사가 장산 개척단을 이끌면서 생활하고 머물던 곳이기 때문이다. 강귀철 대표도 청소년기를 넉넉한 장산의 품속에서 보냈다.
"이정희 여사님은 항상 그러셨어요. 너그 아버지처럼 멋진 사람 없다. 훌륭하신 분이다. 사랑을 해서 너희를 낳긴 했지만 엄마한테 너희 아버진 평생 존경의 대상이고 동지다."
강귀철 대표의 부친은 독립군. 우리 독립투쟁사에 빛나는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었던 북로군정서군 제1 중대장. 북로군정서군은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만주 일대에서 가장 막강한 독립정예군. 스물두 살에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나이가 제일 어린 중대장이었다. 광복이 되자 남쪽으로 내려와 52세 나이에 독립군 출신들로 구성된 육사 8기에 입교,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어 6.25전쟁에 참전했다.
"항일 무장 독립군에 대해 우리가 좀 달리 봐야 해요.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그 혹독한 추위와 더위, 배고픔을 견디면서, 그야말로 풍찬노숙 30년 이상을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는 건 대단한 정신력이죠. 제가 그래서 굉장히 존경하는 거예요."
강 대표는 아버님, 어머님 대신에 꼬박꼬박 강근호 지사님, 이정희 여사님이라 부른다. 두 분을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하는지 확 느껴진다.
일흔 나이에 근현대사 연구
이정희 여사는 우리나라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증손녀다. 이시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막내 동생. 그녀는 6.25전쟁이 터지자 학도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한 후 미군 정보요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연대장이었던 강근호 지사와 같은 사단에 근무한 것이 인연이 돼 34살 나이 차를 뛰어 넘어 하얀 눈이 무릎까지 쌓인 부대 연병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스무 살이 지나면 사회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해. 이정희 여사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울산 현대자동차에 들어갔어요. 낮엔 일하고 밤엔 대학교 화학공학과에서 공부를 했죠."
서른이 되기 전 남편을 잃은 이정희 여사는 홀로 어린 남매를 키우면서 생계를 위해 찾아간 부산 주둔 미군의 도움으로 고아원에 취직했다. 성실함과 일솜씨를 인정받아 육군 제7피복창 안에 전국 최초로 탁아소도 열어 운영했다. 한편으론 역사 속에 묻혔던 남편의 독립운동 공훈을 밝혀내는데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여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도록 하고, 마침내 현충원에 안장되게 했다.
지금은 개인사업 하면서, 유족으로서 강근호 지사 기념사업회를 돌보고 있는 강귀철 대표. 일흔 나이에 불구하고 대학원에 입학,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독립군의 발자취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택시기사 말 한 마디 덕에 장가간 사연
"아는 분 소개로 선을 봤는데 홀어머니에 외아들이고, 가난하다고 저희 집에선 결혼을 엄청 반대했어요. 근데 이 양반이 울산에서 거의 매일 저희 집에 찾아와선 아버지께 넙죽넙죽 절을 하는 거예요. 그 절하는 게 너무 좋다며 저희 아버지만 유일하게 찬성을 하셨어요."
모정원 뜨락 한 쪽에 앉아 강귀철 대표의 부인 김보경 여사가 결혼 스토리를 살짝 꺼낸다.
"저희 부모님이 이 사람 집을 찾아갔다 돌아오시면서 너무 가난하다는 둥 실망 섞인 말씀을 나누셨대요. 그때 택시기사 분이 총각 하나 착하고 성실하면 됐지. 살림살이는 둘이서 살면서 해결하면 되죠.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여유 있으면 사위될 총각 좀 도와주면 되는 거죠. 그러셨대요. 그게 결정적으로 부모님 마음을 움직였나 봐요. 호호호"
나중에 알게 됐지만 양가 부친 모두 함경남도 같은 고향에,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단다. 그 일로 강귀철 대표의 장인은 입버릇처럼 "자네 부친께서 자네를 나에게 보내셨나 보네."라고 하셨다고. 인연이란 게 참 묘하다.
애국지사 강근호 길 한국사 시험에도 출제돼
지난해 제5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심화)에 우리 해운대와 관련된 문제가 나와서 화제가 됐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시행하는 한국사 학습능력 인증 시험이다. 해운대구는 2015년 6월 장산 대천공원에 애국지사 강근호의 길을 열어 강 지사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생들을 데리고 현장체험학습을 오신 선생님. 강 지사님 얼굴을 찰흙으로 빚어 온 학생들. 강근호의 길 조성에 힘을 모아주신 해운대 구민과 공직자 분들, 126여단 장병은 애국지사 강근호실 강근호 교육관 이정희 교육관을 마련해 줬어요. 애국애족 정신을 이어가는 데 많은 뜻있는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맙죠."
모정원에서 열리는 현충일 행사 준비로 일찌감치 현충원에 다녀왔다는 강귀철 대표, 그의 마지막 소원은 부모님의 유언을 실천하는 것. "23년 전에 53사단에서 강근호 지사 추모비를 만들어줬어요. 이젠 강 지사님의 마지막 유언이신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다 쓰러진 만주벌의 이름 없는 영혼들을 위한 추모비 하나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모정원 전체를 현충시설로 지정해서 군·관·민·학생 모두가 함께한 가운데 제대로 추모비를 세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 원성만

<해운대 이 사람> 청산리전투 독립군 아들, 강귀철

<해운대 이 사람> 청산리전투 독립군 아들, 강귀철

<해운대 이 사람> 청산리전투 독립군 아들, 강귀철

첨부파일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4유형:출처표시, 상업적이용금지, 변경금지 <해운대 이 사람> 청산리전투 독립군 아들, 강귀철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