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나무> 벡스코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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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6.01

"파랗게 질린 매실이 꽃보다도 꽃 같아요"

시간 참 빠르다. 한 해가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쯤 왔다. 남은 절반은 또 얼마나 빠를지. 시간이 빠른 건 나무도 마찬가지다. 엊그제만 해도 한겨울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여름 열매가 달렸다. 매화나무가 대표적이다. 한겨울 매화에서 여름 매실로 한창 영그는 중이다.
해운대 벡스코 매화나무를 본 건 올봄. 스마트폰 사진 저장함에는 3월 8일로 나온다. 볼일이 있어 해운대 집에서 수영강 쪽으로 걸어가던 참이었다. 벡스코 건물을 따라 죽 늘어선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꽃도 꽃이지만 꽃이 내는 향이 나를 나무로 이끌었다. 내 얼굴에 향을 바르듯 나무 가까이 다가가 폰에 담았다.
지금도 벡스코. 오늘은 다른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매화 향에 이끌렸듯 매화 향의 추억에 이끌려 다시 찾은 나무는 꽤 무거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날려갈 것 같던 꽃의 자리마다 들어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매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알알이 영그는 매실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나무가 무거워서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도 든다.
꽃이 무거워서/꽃을 떨구었는데/꽃보다 무거워지는/꽃의 자리//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어느 순간 떨어져 나가/떨어지기 전보다 무거워지는/사람의 자리 - 동길산 시 매실
벡스코 매화나무는 고고하지 않아서 고맙다. 매화나무가 죽 늘어선 매림(梅林)은 벡스코 화물주차장 출입구 gate 4 안쪽. 게이트에서 마주 보이는 홈플러스 사이는 10차선 더 돼 보이는 훤칠한 도로. 차가 연신 밀려든다. 산도 아니고 강도 아닌, 나무로선 험지인 여기서 꽃을 피우고 향을 내고 열매 영그는 나무가 그저 고맙고 그저 미안하다.
날씨는 거의 장마급이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 내일 점심까지 올 모양이다. 아침부터 비가 왔으니 매실 알알이 빗방울 알알이다. 매실 익는 철에 내리는 장마를 매림(梅霖)이라고 한다. 림(霖)은 장마 림. 그림 같은 한자다. 비가 숲속 빽빽한 나무처럼 내리는 풍경이 연상된다. 매실이 여름에 익으니 매림은 여름 장마인 셈이다. 봄장마는 춘림(春霖), 가을장마는 추림(秋霖)이라고 한다.
"꽃 핀다고 다 열매 맺는 건 아닐 텐데 비바람 버티느라 파랗게 질린 매실이 하얀 꽃보다도 꽃 같아요."
나무 가까이 다가간 이는 나 말고도 또 있다. 알알이 매실, 알알이 빗방울을 스마트폰에 담는가 보다. 폰이 매실 바구니인 양 묵직하다. 모든 꽃이 열매가 되진 않는다. 숱한 고초를 견디고서 영그는 과일들. 그러고 보면 풋감이니 풋사과니 여기 매실이니 대개의 풋과일은 그냥 파란 게 아니다. 매실 안에 꾹꾹 눌러앉은 속말을 들으려고 한 발짝 더 다가간다.
매실 자리는 꽃이 있던 자리. 꽃의 자리를 더듬듯, 사람의 자리를 더듬듯 손이 닿는 매실을 만진다. 이 매실은 꽃일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봄에 찍어둔 사진을 검색한다. 그 꽃이 그 꽃이고 그 매실이 그 매실일지라도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게 사람 마음. 마음으로 보노라면 사진으로 보는 이 꽃은 지금 내 앞에서 비 맞는 이 매실이 분명하다. dgs1116@hanmail.net

동길산 시인

<해운대의 나무> 벡스코 매실

<해운대의 나무> 벡스코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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