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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표석

이산표석 이미지
상세정보
  • 위치
    장산 일대
설명
이산표석은 조선시대 장산 일원과 충남 예산 가야산의 상가리 일원에 남연군묘를 중심으로 조선왕실 소유의 토지의 경계를 알리는 경계표지석을 말한다. 재질은 석재로 가로 12cm, 세로 12.5cm로, 땅 위로 노출된 길이는 26~27cm, 땅속에 묻힌 부분 포함 총 길이는 76~82cm이며, 무게는 약 40kg으로 추정된다. 직사각형 앞면에 이산(李山)이 한자로 음각되어 있다. 2001년 17개의 표석이 장산과 아홉산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그 중 하나는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이후 발견된 표석은 2021년 1월 기준 장산 우동 20개, 좌·중동 40개, 반여·반송동 23개, 운봉산 일대 24개, 아홉산 27개 등 총 130여개에 달하며, 훼손되거나 위치가 불분명한 표석 등을 합치면 총 300개까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산표석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임야조사령에 대항하여 조선 왕실이 이산표석의 설치를 진행했다고 한다. ‘조선왕조는 남연군 묘가 있는 가야산의 상가리 일대 곳곳에 이산이라는 표석을 세워 가야산 일대가 조선왕실의 사유재산임을 내세워 조선총독부의 재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모면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왕실이 조선총독부에 이의서를 제출하여 재판이 열렸으며 그 결과 가야산 일대가 총독부에서 1924년 창덕궁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산 일원의 이산표석 역시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고 언급되어 있다. 장산 일부 토지대장에는 1917년 국유지로 등기되었다가 1924년 창덕궁으로 소유가 이전되었다고 되어 있다. 이산표석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왕조 소유의 산림과 임야를 약탈할 때 창덕궁이 소유권을 표시하며 저항한 역사적인 산물이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이기에 지속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보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