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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불후의 세계명작 동화 <걸리버여행기> 알고 보면 신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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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2.10.11

숲의 한가운데서 숲을 볼 수 없듯이 제 문화를 보려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네 번의 여행 끝에 걸리버는 드디어 제 문화를 보는 법을 배운다. 여행에서 돌아온 걸리버의 눈에 비친 영국 사회는 역겹기 그지없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원래 신랄한 풍자문학이다.
스위프트에 따르면 소인국 릴리퍼트의 위치는 수마트라 남쪽이다. 하지만 릴리퍼트가 어디 인도양에만 있는가? 당파와 당파가 대립을 하는 모든 곳은 릴리퍼트다.
가령 우리 국회에서 벌어지는 이전투구를 보라. 삶은 계란의 위를 깨느냐, 아래를 깨느냐를 놓고 전쟁을 벌이는 릴리퍼트의 소인들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릴리퍼트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릴리퍼트는 동시에 꽤 현명한 교육과 법률, 관습의 체계를 가진 긍정적 유토피아로 묘사된다. 이상한 나라의 이 이중성이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어렵게 만든다.
대인국 브롭딩낵에도 부정성과 긍정성이 공존하나, 그곳을 다스리는 왕은 서양인들이 흠모한 청나라 강희제와 비슷한 현자로 그려진다. 걸리버는 왕에게 영국의 발달한 무기 제조술을 가르쳐주려 한다. 하지만 적국이나 경쟁국이 없는 대인국의 왕은 그 생각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총포의 비밀을 아느니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 잃겠다고 대꾸한다. 브롭딩낵은 북미의 태평양 연안의 반도이지만, 거기서 나는 당시 유럽인들이 이상화하던 중국의 이미지를 본다. 걸리버가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려주자, 브롭딩낵의 왕은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그대의 민족 대부분이 세상의 표면을 기어다니는 생물들 가운데 가장 유해하고 밉살스러우며 작은 벌레들의 모임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세 번째 여행기에서 그는 당시의 과학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천공의 섬 라퓨타에 사는 이들은 오로지 수학과 음악에만 관심이 있다. 빵과 고기마저 원형, 사각형, 정삼각형, 사다리꼴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를 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인간이 외계인을 만나더라도 수학과 음악은 일치할 것이라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호이겐스의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라퓨타의 아카데미에서는 별 희한한 실험이 행해진다.
오이에서 태양광선을 추출해 정원에 빛을 대는 실험, 인간의 대변을 다시 음식물로 되돌리는 실험, 촉각과 후각으로 색을 구별하는 실험. 누에 대신 거미에서 실을 뽑는 실험, 기계 장치로 알파벳을 조합해 책을 쓰는 실험, 심지어 대변의 색을 분석해 그것을 싼 이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실험. 이게 가능한 것은 사람이 변기에 앉을 때면 언제나 생각이 깊어지기 때문이란다. 어처구니 없지만, 이 책에서 스위프트가 소개한 어처구니 없는 실험들의 상당수는 당시 영국의 과학회에 실제로 보고된 것들이라고 한다. 
현실에 좌절한 스위프트는 결국 말의 나라에서 마침내 이상향을 발견한다. 그 나라의 이름은 휴이넘(Houyhnhnm). 히히힝이라는 말의 울음소리를 본뜬 것. 우아한 휴이넘들은 자연적으로 많은 덕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절제, 근면, 청결을 교육받고 서로 우정과 사랑으로 결합한다. 그들은 욕망·정욕·질투·무절제를 모르며, 그들의 언어에는 아예 악이라는 낱말이 없다.
말들이 실현한 플라톤의 이상국가인 셈이다. 반면 이 휴이넘들의 수레를 끄는 인간 짐승들은 교활하고 음탕하다. 이들은 야후(yahoo)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 유명한 검색사이트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걸리버는 이 나라에서 고귀한 말들의 덕성에 감화돼 스스로 말이 된다. 고향에 돌아와 가족을 만난 그는 자기가 야후들의 아버지이며 더러운 야후와 성교를 했다는 생각에 수치심을 느낀다.
정치에 대한 혐오에서 걸리버는 정치로 덕을 실현하던 고대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처럼 정치를 덕의 실현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가 실현해야 할 그 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특정한 가치를 덕으로 강요할 경우, 그 사회는 전체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스위프트는 모던의 과학과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했지만, 역사의 흐름은 이처럼 그의 풍자를 외려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기독교의 목사이자 보수당의 당원으로서 스위프트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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