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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독자마당-수박의 세 가지 맛

문화∙생활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8.03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습도가 높아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무더위가 지속되던 지난 주, 시어머니께서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구십이 넘은 연세에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터라 더욱 주름살이 패이고 흰 머리카락이 많으며 검게 탄 모습이셨다.
평소 안부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늘 죄송했다. 더구나 몇 년 전에 가벼운 뇌졸중까지 찾아들어 걸음마저 약간 불편하시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식들이 아무리 도시로 오시라 해도, 공기 좋고 말벗 많은 시골이 좋다며 한사코 홀로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신다. 잠깐 오실 때마다 양파 감자 마늘 고추 오이 상추 등을 잔뜩 들고 오신다. 직접 농사 지은 유기농 작물이라며 보따리 한가득 갖고 오시니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먹을 것이 마땅찮아 근처 마트에서 수박 한 덩이를 대충 만져보고 사 왔다. 행여나 익지 않았으면 낭패일 것 같아 걱정됐다.
시어머니는 대뜸 "따 보지 않아도 잘 익은 것을 알 수 있겠구나" 하시니 안도가 됐다. 쪼개보니 정말 빨갛고 탐스럽게 잘 익어 있었다.
꼭지 둘레가 조금 꺼져 있는 수박이 잘 익은 것이라고 일러 주셨다. 덕분에 수박 고르는 비결을 알았으니 살 때마다 칼로 삼각형으로 도려내는 번거로움은 면할 것 같다.
다 먹은 뒤 껍질과 씨를 버리려 했더니 "얘야, 그건 버리지 말고 저녁 찬으로 먹어 보렴" 하시며 요리하는 법을 설명해 주셨다. 먹고 난 수박껍질에서 겉껍질은 벗겨 내고 채를 썰어 소금과 기름을 넣어 볶으면 초가지붕 위의 박나물 맛이 나고 된장찌개에 넣으면 싱싱한 수박 냄새가 살짝 코끝에 배어 여간 맛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일부는 볶아 나물로 먹고, 나머지는 된장에 넣어 끓였더니 과연 별미였다. 일거삼득인 셈이었다.
옛말에 나이 든 사람 애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박 감별요령과 수박껍질 활용에 대한 시어머니의 지혜는 순전히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산지식이요 산체험 그대로다. 훗날 나의 자식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꼭 전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저녁에는 날씨도 덥고하니 추어탕을 드시러 가자고 했더니 그러잖아도 추어탕 끓일 재료를 가져왔다고 하신다. 큰 솥에 국거리를 넣고 어머님이 시킨 대로 재료를 차례차례 넣었더니 명절이나 여름휴가 때마다 끓여 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찌는 듯한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생활의 보탬이 되는 산지식을 배웠으니, 시원하고 흐뭇한 하루였다.
우윤숙(재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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