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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독자마당-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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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5.01

창으로 들어온 노란 햇살이 따뜻하고 부드럽다. 빌딩 숲에 둘러싸인 마린시티에도 봄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풀리지 않은 글을 잡고 있자니 온몸이 쑤신다. 감기약 탓이라 변명을 해보지만 그렇다고 글이 나를 이해해주며 잘 풀릴 리는 없다. 마음은 조바심이 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방파제가 둘러쳐져 있는 해변을 따라 산책이라도 할 참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상가 1층엔 온통 커피 향이 가득하다. 근처에 있는 회사원들이 식사 후 즐기는 빼놓을 수 없는 커피타임이다. 출입문을 열자 건물 내부보다 더 따뜻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봄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데 아직 마음은 한겨울이다. 공기가 찬 시골에서 잠시 마스크를 벗은 탓이다. 항상 이 시간이면 도로 양쪽으로 차량이 즐비한데 오늘은 한산하다. 바다와 하늘은 어디가 경계인지 모를 만큼 해무가 잔뜩 끼어 있다. 어렸을 땐 바다 한가운데였던 이곳에서 나는 동백섬 쪽으로 걷고 있다. 결혼 첫날 밤을 보낸 조선비치호텔도 늘 보던 곳인데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동백섬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본다. 피식 웃음이 난다.
여름방학 때, 친구들이 우리 집이 해운대에 있다고 놀러 왔다. 저기 보이는 바닷가에 갔다가 교외지도반 선생님께 잡혔다. 나는 그 사건이 너무 부끄러워 아주 오랫동안 비밀로 했다. 소위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이나 교외지도반에 걸리곤 했으니까. 우리는 그들을 매우 안 좋게 보았다. 개학 날 교무실로 불려갔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우리는 무사히 넘어갔다. 그땐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학생 출입금지인 줄도 모르고 교복을 입고 갔으니 한심한 범생이었다. 걸으면서 또 피식 웃는다. 저 멀리 엘시티 아파트와 더 멀리 달맞이 고개에 우뚝 솟은 아파트 허리를 해무가 감싸고 있다. 백사장 위를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날고 있고, 난 잠시 어린 날의 추억 속에 잠겨 있다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글이 잘 풀리길, 의욕 잃은 내게 다시 봄기운이 스며들기를 빌며.

안덕자 동화작가(우3동)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아동문학상 수상, 한국동요대상수상. <박재혁> <고래를 타는 아이> <굿하는 날>외 다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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