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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독자마당-황혼 육아,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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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6.01

손녀의 작은 손을 유치원 안으로 밀어 넣고, 왔던 길로 되돌아 왔다. 아직은 썰렁하여 옷깃을 세우고 걷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뒤돌아보니 노크도 없이 찾아온 봄바람이었다. 겨우내 코로나로 감기로 기운이 다 빠져 움츠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연분홍 벚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성미 급한 꽃잎들은 눈꽃이 되어 내 머리 위에서 춤을 춘다. 잠시 사춘기 소녀가 되어 비발디의 봄에 취해본다.
집에 들어서니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원하는 핀을 고르느라 쏟아 놓은 머리핀, 먹다 남은 밥. 집안 어디에도 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나에게 무슨 호사스런 봄인가 싶어 손녀의 애착이불을 탈탈 털어 햇빛에 말린다.
마흔 다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던 딸이 결혼만 하면 덕지덕지 붙어있는 내 삶의 먼지들을 훌렁 벗어 던지고 오직 나만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맞벌이 하는 딸은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장 친구들과의 약속도 자유롭지가 못했다. 어쩌다 점심 약속이 있을 땐 밥만 먹고 바쁘게 달려 와야만 했다. 조갑지 같은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할머니 사랑해~"라고 말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손녀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없고 오직 할머니만 있다는 것이 때로는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들끼리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커피도 마셨다. 금빛 잔물결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공감대가 같은 할머니들끼리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아이들 하원시간이 다 되어 깜짝 놀라 일어서야만 했다.
딸 같은 젊은 엄마들과 카톡을 나눈다. 여행 갔다 왔다고 작은 선물을 나눠주고 시골에 다녀온 날 과일과 상추를 한바구니 갖다 주기도 했다.
"할머니 생신 축하 드려요~" 빨간 딸기 케익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고맙고 행복한 생일이었다. 또 다른 나의 노년이 이젠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싶다. 티니핑을 좋아하는 손녀의 얼굴이 봄꽃처럼 화사하게 다가온다.
홍옥연(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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