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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다정함이란 단어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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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1.12.01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다정함이란 단어에 관해

싱글족과 정신 상담 TV 프로그램, 시대상 반영
가상 아닌, 현실에서 맞는 불화 잘 대처하지 못해
삐걱거리며 마찰 있어도 그들은 소중한 참 존재
연말 맞아 다정함으로 실재하는 것들과 소통하기

최근 싱글족과 돌싱족들의 갖가지 이야기들과 사연들이 TV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마음속의 고민을 풀어놓는 정신 상담 관련 TV 프로그램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왜 많은 사람이 혼자 살며, 이혼을 하며,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할까.
이런 현상들은 딱히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파편화 고립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SNS 같은 가상공간의 출현으로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불화들에 대해 잘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현상에 한몫을 거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개 온라인상에서는 자기와 의견을 같이 하는 동질 집단의 많은 사람과 연결돼 있다. 그런데 현실의 실제적 만남에서는 타인과 마찰이 생기며 덜커덕거리는 소음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훌륭한 소통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타인과 소통하는 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곤란을 겪는다. 상대방 머리를 들여다 볼 수 없어서 곧잘 말실수를 하고 송곳 같은 날카로운 말로 상대방 마음을 찌르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느낌은 실체이고, 타인에 대한 느낌은 그림자다"라고 말한 아담 스미스의 말은 타인과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어렵다는 뜻이다.
멀리 실체를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한 애정을 날리는 데 반해,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과의 소통과 사랑의 방법에는 미숙하기 그지없다. 정작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감정 처리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좋아요, 후기 같은 가상공간의 글에서 검색-복사-붙여넣기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따르면서,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은 사라져버린다.
실제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근무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존경심과 관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데 반해, 집에 있는 아내에게는 정작 노력하지 않는다. 이미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므로 걱정 할게 없다며 방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바깥에서는 미소를 지우며, 누군가 어깨를 부닥쳐도 "괜찮습니다"라고 하는데, 집에 오면 그 미소와 "괜찮다"는 말은 어느새 사라진다. 우리는 너무 쉽게 얻는 것을 가볍게 취급해서 일까. "가장 쉬운 관계는 여러 명과 맺는 것이며, 가장 어려운 관계는 단 한명과 맺는 것"이란 말이 생각난다.
대략 35억 년에 이르는 지구 생명사에서 결혼과 사랑의 역사는 약 20억 년 전에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자기복제에 의존하던 원핵생물이 죽음의 개념을 모른 채 영원히 살았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20억 년 전 성격이 다른 두 세포가 하나로 공생 결합하는 진핵생물이 탄생한다. 지구 생명사에서는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각자 다른 두 세포가 공생하는 유성생식으로 인해 사랑과 죽음의 역사가 함께 시작한다. 오랜 사랑의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동물과 식물의 사랑법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야성적이며 혁신적이며 다채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인간은 사랑이란 단어에 성숙하지 못한 채 많은 진퇴양난과 우여곡절을 겪는다.
부부의 경우도 신혼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오면서 시련도 많았겠지만, 모든 여행의 종착지는 결국 첫 출발지다. 인생의 묘미는 그 터닝포인트를 돌면서 그동안 익숙했지만 무심했던 풍경들을 마법같이 내면으로 끌어오는 데 있다. 그동안 무심했던 아내와 부모, 친척들, 이웃들을 찬찬히 살피면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결혼은 영웅적 여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한해를 또 다시 넘기는 무렵에 격정적인 사랑이 아닌, 다정함이란 단어를 떠올려본다. 다정함이란 영화의 한 장면과 소설 속 뜨거운 사랑의 언어가 아니다. 다정함은 오버액션 하지 않으며 온화하다. 따뜻한 미소로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상대가 반길 구체적인 뭔가를 한해가 다하기 전에 실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오늘 당장 "고맙다 나를 키운 바람아/ 고맙다 내 젊은 날들아/"란 구절을 떠올리며 그동안 무심했던 가까운 이들을 더 사랑하는 연습을 하자.
한해가 노루꼬리 같이 짧게 기울어지는 연말이다. 뭔가 허허로운 마음과 뭔가 설레는 마음이 늘 교차하는 지점이다.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며 마음의 끈을 놓았는지도 모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가족과 지인들, 이웃들과 손을 잡고 따뜻한 촉감을 느끼자. 설령 삐걱거리는 소리로 신경이 덜커덕거릴지라도, 바로 곁의 사람이 내는 살아 있는 목소리와 몸짓에 다정하게 화답하는 것이다.

박 태 성


·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석사/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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