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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벚꽃과 함께 걸어요 …

문화∙생활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1.04.02

절정에 있을 때 삶에 미련을 두지 않는 벚꽃
치열한 삶을 살면서 죽음을 초월한 고혹적 자태
인간의 금방과 벚꽃 일생 간 시간의 상대성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는 벚꽃의 지혜

여기저기 벚꽃이 활짝 피었다. 많은 봄꽃들 가운데 매혹적인 자태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단연 벚꽃일 것이다. 아침 햇살이 잔뜩 물든 가지위로 활짝 핀 벚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밤 산들바람에 눈송이처럼 팔랑거리며 제 몸을 떨구는 벚꽃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절정에 있을 때 미련을 두지 않고 지고 마는 벚꽃의 비장(悲壯)함…. 자기 임무를 마친 후 삶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듯,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진다. 죽음이란 종말이 어깨 위에서 또렷이 내려 보고 있는데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그 초월함…. 벚꽃은 우리로 하여금 성숙의 의미를 깊숙이 끌어들인 후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
삶의 목적이 죽음인 듯 스스로 떨어지기를 재촉하는 벚꽃은 시공간의 축지법을 쓰는 듯하다. 시간과 공간을 축약하는 벚꽃을 보면서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려본다. 고흐는 별빛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천상에 빨리 이르고자 마치 축지법을 쓰듯, 원근법을 무시하고 현실의 땅과 하늘과의 거리를 과감하게 줄여 버리는 기법을 썼다. 그는 "나는 이 강가(론강)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 흐름을 느낀다.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라고 말했다. 마치 삶은 영혼의 안식처인 죽음의 부산물이란 듯, 죽음을 초월해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치열한 삶을 살면서 씨를 퍼트린 후 마지막 남은 자양분까지 뿌리로 돌려주며 생을 마감하는 벚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어져서 가득한 모습에서 숭고한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된다. 절정의 벚꽃은 쓸쓸하지만 숭고하다. 제 있을 자리를 안다. 금방 피었다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벚꽃으로부터 죽음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찬란한 봄날에 봄날은 간다란 대중가요가 심금을 울리는 것도….
정처 없이 왔다가 정처 없이 떠나는 우리의 일생에서 죽음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근대화 이후 인위적인 너무 인위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진다. 기술이 마술 같이 발전한 사회에서 인간의 근대화된 행동은 처절한 존재 투쟁과 잔혹한 자연에서 멀어졌을지 몰라도, 죽음을 너무 부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인위적인 시계 역시 끊임없이 지금을 고정시키면서, 지금이 영원히 축적되는 양 착각케 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죽는 방법을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연이 삽시간에 가르쳐준다. 또한 잘 알아서 처리해주니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의외로 죽음의 순간에 모든 것에 초연한 평온을 발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벚꽃은 떨어져도 아름답다. 죽음을 뚫어 보는 그 믿음 가운데서(워즈워드 초원의 빛), 겨울 강추위를 감내하며 침묵의 시간 속에서 내면을 단단하게 키워왔다.
흔히 눈 깜짝할 사이 벚꽃이 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의 금방이라는 시간은 벚꽃에게도 과연 짧았던 시간이었을까? 하루살이의 하루가 인간의 하루와 같은 차원일까? 힌두교 브라흐마 신의 하루는 인간의 4억3천2백만 년에 해당한다고 하니, 시간의 상대성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인간의 시간 역시 하루살이에도 못 미치는 짧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과 활동의 밀도에 따라서 측정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생각과 활동을 멈추면 시간은 닫혀버린다는 것이다. 시간은 마치 자원이 유한한 공공재와도 같아서 밀도 있게 느끼며 생각하는 사람에게 열리며 축적된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열리며, 요청하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먼 우주에서 보내는 텔레파시도 한정된 자원이어서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송신을 할 것이다. 인생은 한번 뿐이다. 그런데 제대로 산다면 그 한번으로도 충분하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석양은 그 자체가 아닌, 주위를 신비하게 물들이는 노을의 눈부심으로 인해 더 돋보인다. 그 석양도 한낮동안에 이룬 사랑의 밀도가 더 높으면 주위를 더 눈부시게 한다. 한 번 주어진 인생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밀도 있게 사는 것….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으로부터 그 오묘한 지혜를 배운다.

박 태 성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졸업/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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